어느 자퇴생의 고백, 씁쓸한 '등록금 인상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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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차게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할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저마다 어떤 사연으로든 간에 결국은 '치솟는 등록금 인상' 에 항의하기 위해 나온 이들이다. 불현듯 그들이 몇년 전 청년실업률이 치솟는 때에도 잠잠했던 그들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열악하고, 힘든 가정환경에서는 결코 대학 졸업장을 딸 수 없다. 이는 물가상승률 보다 압도적인 상승률을 보이는 대학등록금이 저지른 족쇄인것 이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위해 대학을 다니냐는 본질적인 문제부터가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제는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대학들과 얼마든지 강남 족집게 학원과 과외, 탄탄한 환경만 받쳐주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한 학생들이 그런 학생들을 따라잡기란 더 어려워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더 불가능해져 가고 있다고 본다.
나만 어떻게든 잘되고 봐야 한다는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팽배하여 청년들은 부모들이 주는 과도한 무게감에 당연히 나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거쳐가야 하는 순례인 것이다.
지금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재학동안 대출을 계속 받았던 학생들 중 대개는 취업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신용불량자' 로 전락할 벼랑끝까지 내몰리고 있다. 그들 에게 남은 건 졸업장과 빚 몇천만원이었다.
그런 그들을 받아주는 기업은 한정적이고, 졸업생들은 넘쳐난다. 걔 중에는 '신불자(신용불량자)'가 된 학생들도 있단다. 그럼 그런 초년생들을 기업들이 과연 쓰려고 할 것인가. 기업들의 불문율로 붙여진 것이 '신불자' 학생들은 뽑지 말자는 것이다.
끄덕하면 대출로 인한 가불이 회사로 하여금 상당히 껄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신입의 '실력'이 월등이 뛰어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애초에 불씨를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위의 말마따나 자퇴하고 난 뒤, 필자를 거들떠 보는 회사는 더더욱 없었고, 필자가 바라보고 지원해 볼수조차 없는 회사들 뿐이다. 회사의 자격조건은 '대졸'이었던 것이다.
불합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필자는 사회를 증오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결국 우리 나라 병리적인 생리현상이니 결국 순응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다. '악법도 법이다.' 며 자신을 구하러 온 제자의 손길을 거부했다. 사회의 태상이 그러할진데 필자가 그걸 거부하고 미워한다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얼마든지 운명을 개척하고, 의지만 있다면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왜 그토록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운명과 처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는 것일까. 입발림 소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지구를 엎을 수도 있다.
그건 마치 삼국지의 '조조' 나 '유비' 처럼 그런 사람들과 일반 사람들을 같은 사람으로 보고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는 것과 같다.
극단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결코 위의 생각들이 부정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가 자퇴를 한 건 지금에 와서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거리에서 시위하고 있는 학생들이 측은하게 생각될 뿐이다.
필자가 이렇게라도 블로그에서 나마 외면하지 않고 피력하려 했던 이유는 그들이 대학생활에서 등록금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잠시나마 거기서 떨쳐버리고 싶어했던 슬픔이 매우 필자와 닮아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더욱 더 지금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의 용기(?)는 결국 몰릴대로 몰린 비정상적인 사회시스템에 정면도전하는 생존권이 걸린 몸부림이 흔들리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